[기고] 지역의 조용한 혁명, 오충근 후원회
/ 김원명 경성대 음악학부 교수

한국 땅덩어리 안에서 서울이나 그 근처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대우를 받고 사는 것일까? 적어도 문화예술 판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회의 다른 분야 못지않게 문화권력, 문화자본의 서울 집중 현상은 심각하다. 서울 지역의 음악 역사를 기록한 책을 당연한 듯이 한국의 음악사라고 제목 붙이는 일은 비교적 겸손한 오만함에 속한다. 서울이 곧 한국이고 한국이 곧 서울인 대한민국이다.

수년 전 모 학술지 편집 관계로 서울의 한 원로 음대 교수와 전화 통화를 한 필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작고한 부산의 1세대 음악인들에 대해 부산 지역 음악학자들이 애써 연구한 연구들을 서울 음악인들에 대한 연구들과 같이 게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그 분은 이 한마디로 일축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 관심 없어요." 아예 논의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에겐 더없이 중요한 선생님이며 선배인 분들이 그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대상이었다. 물론 모든 서울 음악인들이 이 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여기서 우리 지역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실 총칼을 들지 않은 혁명이라도 일으켜야 할 판이다. 그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면서, 우리 스스로 힘을 갖는 방법을 찾자고 외친다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아우성일까. 문을 닫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자는 속 좁은 외침으로 들릴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최근 부산에서 있었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매우 힘이 실린 외침이었다. 지난달 26일 저녁,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마에스트로 오충근 후원회 창립 1주년 기념음악회'를 말함이다. 지역의 한 음악인을 후원하여 세계적 스타로 키우자는 목표를 세우고 음악애호가, 기업인 등이 뜻을 모아 만든 후원회가 활동 1주년을 맞아 마련한 무대이다. 그 동안 음악 단체를 후원하는 조직은 몇 차례 만들어졌지만, 한 개인 음악인을 집중 후원하는 일은 아마도 지역에서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지휘자 오충근과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를 향해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연주회였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른 채 음악회의 열기를 즐겼다.

오충근은 음향의 조련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관객의 중개자로서 그의 지휘 동작 속에는 의미 없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날카롭고 예민한 지휘는 최근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보아하니 이제 그는 세계적 지휘자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역량을 갖춘 것 같다.

일본 출신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한 것이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충근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절반의 책임은 이제 '마에스트로 오충근 후원회'의 몫이다. 후원회의 높은 뜻을 기리고 앞으로도 후원의 열기가 식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때이다.
출처: 부산일보

2008/03/19 09:25 2008/03/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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